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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분묘문화재
인되었으며 각종 석물이 발굴되었다. 석물은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석호 2점과 단국대학교에서 난간석주 2점을 보관하고 있으며 경희대학교 박물
관에서 발굴한 석양 1점 등은 안산향토사박물관에서 야외 전시 중이다. 옛터는
2009년 공단이 들어서면서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없는 실정이다.
3)
한편 소릉과 관
4)
련하여 안산지역에‘관우물’전설이 전해진다.
2. 고잔동 태봉 옛터
안산문화원?안산향토
사박물관의 야외 전시장
에는 고잔동 태봉
에서
胎封
수습한 것으로 전하는 태
이 전시되어 있다.
胎函
3)
경희대학교 박물관, 《현덕
왕후 폐릉지 발굴조사 보고
1999년에 편찬된《안산시
서》, 1982 ; 안산시사편찬위
사》
의〈문화유산〉
편에 의
원회, 《안산시사》상, 1999,
575?577?621?622쪽 ; 안
하면 위치는“안산시 고잔
산시사편찬위원회, 《안산시
안산문화원?안산향토사박물관 야외에 전시된 고잔동 태함
동 산18번지”
인데
“태함
사》중, 1999, 622?627쪽.
은 도굴된 상태이고 일부
4)
안산시사편찬위원회, 《안산
시사》중, 1999, 731?733쪽.
는 매몰되어 있으며 약 1.32×0.6m 정도 겉으로 드러나 있고 비좌
는 93×57
碑座
×50㎝이다”
라며 구조와 현황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 및 유래에 대
5)
태함은‘태실석함(胎室石
函)’
의 약칭이다. 태함은 뚜
해서 설명하기를“고려시대 왕자의 태를 묻은 곳이라 하여 태봉이라 전해 오는
껑인‘함개(函蓋)’와 몸체인
‘함진(函身)’으로 구성된다.
곳으로 현재 태를 묻었던 흔적과 비를 세웠던 밑부분만 남아 있다. 마을 주민들
에 의하면 산봉에 태를 담아 매장하였던 솥과 같이 생긴 석조물이 있었는데 이
6)
태함 수습에 관여했던 안산
문화원 이현우 사무국장은
비가 세워지면서부터 이곳에서 마주 보이는 월피동 부녀자들이 바람이 나기 시
태함이 있던 위치를 고잔동
산18번지가 아니라 현 고잔
작했다는 전설이 있어, 1940년경 이곳 주민들이 비의 윗부분을 산 아래로 굴려
동 주공8단지 아파트라고
버려 논바닥에 묻혀 있게 되었다고 한다”
라면서 특기 사항으로“태봉에서 나온
지적하였다.
8)
석함은 현재 안산시 청소년 복지회관 뒤뜰에 보관되어 있다”
고 부기하였다.
7)
태실(胎室) 비석의 비좌(碑
또한 동일한 책의〈구비문학〉
편에는“간혹 왕자의 태라는 얘기도 하지만 전해
座)도 관리 소홀로 폐기된
상태이다.
오는 얘기로는 공주의 태야”
라는 주민의 증언을 수록하였고〈지명유래〉
편에도
8)
안산시사편찬위원회, 《안산
“고려 때 왕자의 태
를 묻었다 하여 이 산을 태봉이라 칭했고”
라는 또 다른 주민
시사》상, 1999, 596?5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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